서요한 목사 동행일기 / 2022. 2. 12

교회가 무엇일까 새롭게 고민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떤 교회를 원하실까? 선교는 예배가 없는 곳에 필요하다. 선교는 그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이다. 수많은 선교와 순교의 피를 적시며 한국교회가 세워졌다. 이런 정의를 수없이 듣고, 말하고,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실까 무척 궁금합니다.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배웠습니다. 건물과도 무관하고, 조직과도 상관없고, 재정이나 영향력있는 개인과도 상관없는 성도들의 연합.. 문제는 실제로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인가 그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잘 믿는다? 주님께서 주인이신가? 생각과 언어와 행동의 통제권이 내 자아인가? 성령이신가? 그것이 핵심입니다. 믿는다는 표현의 핵심은 의존한다. 의지한다. 따라간다.. 이런 의미가 포함될 겁니다.

이런 분명한 통제력을 인정하고, 자기 자아를 죽이며, 성령의 감동과 이끄심에 순종하는 성도들에게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주일 성수보다 더 중요하고, 십일조 및 헌금 생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여러가지 봉사에 필요한 희생과 헌신보다 수천수만배 중요합니다.

몇개월전 혼자서 몇명의 남자 성도들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태 지워지지 않는 큰 상처입니다. 앞으로 두번 다시 그렇게 만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단 한 사람도 필요한 이야길 해 주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교회가 필요한 시대인데, 아직 옛날의 그 교회 사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해결책이 없습니다. 제 생각이 바뀐다면, 저는 스스로 목회를 못하는 겁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목사가 꺽이면, 목회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못하는 겁니다. 든든히 서 주길 그토록 바랬는데, 부족함 많은 목사지만.. 동역하자고 한 건데, 다시 과거의 그 교회를 세우자 합니다. 이제 세상도 인정하지 않는 그 교회를? 이미 많은 성도들이 실망하고 상처받은 그 교회를? 그러면서도 먼저 희생하긴 어려운, 눈치보며 누군가 하겠지 하는 묘한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어찌 우리만의 문제일까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거나, 두려워서 건드리지 않을 아젠다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모이는 공동체, 물질 가치관을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는 성도들의 공동체,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바로 그 교회.. 문제가 많은 목사도 주님 은혜로 사역하고, 날마다 무너지는 성도들도 주님 은혜로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 공동체가 세워지길 오늘도 기도합니다. 어쩌면 온라인 교회가 진정한 대안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수요일 대표기도가 왜 이렇게 제게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주님, 오늘도 성도들과 함께 잘 살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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