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기도하면서 주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목사인 제가 예수님을 실제로 믿지 못할때가 있었음을 고백할때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두려움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목회의 동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학문적인 깊이는 거의 없지만, 교수라 불리는 삶을 즐기고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저처럼 불안해 하거나, 혹은 두려워하거나, 염려로 가득찬 삶을 산다면, 그건 안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평안을 누리는 삶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생기고, 질투가 느껴지면, 그것도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인간 감정이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을 누리는 삶은, 그 감정을 초월하는 존중과 연합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게 그런 사랑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성도들이 그런 사랑을 체험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한 목자님이 오셔서 식사하고 차를 함께 마십니다. 누구든지 저를 찾으면, 차별하지 않고 만나고 교제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만남과 모임이 시작될 때, 기존 모임에 속한 분들은 참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처음 시범목장을 할 때, 그토록 자주 만나고, 삶을 나누고, 교제하며 무척 친밀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성도들과 두번째 목장을 시작할 때, 처음 목장 가족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목사님이 우리를 떠났다는 상실감,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는 고백을 들으며 고민했었습니다. 심지어 그집 목사님이란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사랑이기에 얼마든지 이해하지만, 이젠 영적 성숙함을 요청드려봅니다. 성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아닙니다. 모든 면에서 경험 많고 성숙한 분들입니다. 소통과 관계의 기술은 다소 약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방식의 소통이 아니라, 목사님 방식의 소통을 따라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수년동안 목사로서 저는 조금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아시겠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교회 개혁의 동역자로 세워지길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제 그 날이 가까와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또 다른 목장을 찾으려고 합니다. 세번째 시범목장입니다. 목사가 중요하지 않고, 목자가 중요합니다. 그 사랑을 이어가는 것도 목자의 사역입니다. 흉허물 다 보여도 괜찮습니다. 본래 죄인 이었던 우리지만, 복음으로 새로워진 인생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믿음은 통합니다. 진심도 시간이 지나면 통합니다. 언젠가 아시게 될 겁니다. 모두가 하나로 세워지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